엄창옥_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며칠 전에 친척과 함께 동대구역 부근의 아파트 분양 모델하우스를 다녀왔다. 그 친척은 무주택 생애최초 분양자였다. 지역주택조합의 위험부담이 염려되어 조합 가입을 주저하는 가난한 친척에게 분양사무실 직원은 “내가 대구에서 25년 이상 수많은 아파트를 분양해왔지만, 시간이 좀 걸릴지언정 지역주택조합이 무산되는 일을 본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술 더 떠서 말하기를 “지금 분양가가 절정이어서 곧 내릴지 모른다고 사람들이 말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말해 놓고 뒤에서는 모두 한두 채 더 분양 받아 2, 3억 쉽게 벌어 간다”는 것이다.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부동산 불패신화를 끝도 없이 이야기 하였다. 친척분의 믿음이 점점 높아갈 때 즈음 우리는 분양사무실을 나왔다.
어떻게 해서 부동산 불패신화가 우리사회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필자는 그 연원을 분명히 다 밝힐 수 없지만, 소위 ‘토지공개념’의 부침의 역사만 더듬어보아도 그 윤곽을 알 수 있다. 토지공개념이 우리나라 부동산에 공식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 1980년대 중반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강남(영동)개발을 통해 부동산 권력이 형성되었다. 정부는 이들에게 파격적 혜택을 주었고 이들은 정권에게 정치자금을 대었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 이래 토지를 둘러싼 지대추구행위가 극에 달했다. 그래서 민정당의 노태우 정부가 토지공개념3법을 국회에 통과시켰다. 그러나 지대추구행위는 정치권력을 등에 업기 마련, 토지공개념 관련법이 위헌과 헌법불합치라는 법란(法亂)과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모두 폐지되고 말았다. 부동산 권력의 두 번째 승리였다. 그 후 노무현 정부는 “앞으로 부동산 투기로 돈 버는 것을 포기하라”고 지대추구행위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며 토지공개념을 재도입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경과하면서 경기부양이라는 명분으로 희석되고 말았다. 부동산 권력의 3번째 승리였다. 삼세판의 승리였으니, 그들의 신화가 정착될 만하다.
문재인정부가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부동산 권력은 이 정부의 핀셋규제-찔끔증세로 이어지는 부동산정책을 보면서 이미 부동산 신화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 같다. 지금 와서 종부세 강화와 속도감 있는 공시가격 현실화율로 부동산 권력을 압박해도 그들은 요동치 않는 것 같다. 아마 세금폭탄·징벌과세를 운운하며 토지초과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퇴로를 확신하는 듯하다.
지금 부동산 신화와 대결하는 전선에 이상이 생기고 있다. 두 명의 부동산 담당 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났다. 여기에다 LH직원 부동산투기로 기름을 부었으니 국정지지도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4.7 보궐선거에서 여당지지율이 낮아지니 시장 후보자들은 벌써 표를 의식하여 부동산권력과 타협 여지를 내보이고 있다. 만일 대선에서 또다시 타협이 일어나면, 부동산 불패신화가 더 큰 위세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동산 불패신화는 4연승하게 되고, 국민은 더욱 부동산 불패신화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젊은이는 지대 추구의 길을 모색하게 되고 사회는 양극화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결코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것이 네 가지 있다. 첫째, 다주택자나 임대사업자들의 불로소득을 실현하는 퇴로를 열어줘서는 안 된다. 둘째, 종부세율을 완화해서는 안 된다. 셋째 공시가격 현실화율의 속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넷째 경기활성화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을 도구화해서는 안 된다. 이제 정부의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 과다보유 주택을 시장에 내놓으라는 것. 과다보유로 인해 발생한 초과이득을 세금으로 환수하겠다는 것. 이 원칙이 지켜져야 부동산 불패신화를 종식시킬 수 있다. 부동산 불패신화는 지대추구세력이 만들어낸 신화일 뿐이라는 점을 이번에는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출처 : <함께하는 세상> 2021년 4월호 통권 28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