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txt <김승남 회원>
나는 술이 좋다. 그런데 좋아하는 만큼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가끔(?)은 술 때문에 곤욕을 치르곤 한다.
그런 곤욕 시리즈 최신판
며칠 전 주말 저녁, 지인과 자주 가는 술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전거를 타고 나오는데 멀쩡하던 하늘에서 비가 온다.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아서 자전거는 접고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는데, 근처에 차를 세우고 나오니 또 비가 오지 않았다. 즐겁게 마시고, 웃고 떠들다가 지인분 내외가 먼저 집에 가셨다. 보통은 함께 귀가하는데 그날따라 왜 날 혼자 남겨두고 가셨는지…. 그 뒤 또 즐겁게 마시고 떠들다가, 지하에서 다트게임을 했는데 어두운 상태에서 바닥에 떨어진 강력 테이프가 붙은 간판을 밟고 넓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나중에 CCTV로 보니 정말 깔끔하게 앞으로 고꾸라지더라. 걱정하는 지인과 사장님이 생각나는데…. 그 뒤로 계산하고 나온 기억이 어렴풋이 나고…. 차가 있는 가게까지는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비가 많이 왔던 것 같고, 왼쪽 발목을 접지르고, 차 뒷자리에서 먹은 것을 토해내고;;; 상가 화장실을 갔는데 차 문이 잠겨버려서 집까지 아픈 다리를 끌고 걸어간 기억….
시작부터 하늘이 오늘은 술 마시지 말라고 비를 내렸던 것 같은데 뭐…. 이미 술은 마셨고, 일은 벌어졌고. 다음날 차량 긴급서비스를 불러서 차 문을 열어보니 다행히 지갑과 열쇠 등등은 그대로 다 있더라. 일 년에 한 두번(?) 술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그럴 때 마다 금주 내지는 절주 생각을 하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또 술을 찾는다.
최근 발매한 백자님 3집 앨범에 '그거'라는 노래가 있다.
술은 끊어도 담배는 못 끊겠는 거, 그거. 담배는 끊어도 커피는 못 끊겠는 거, 그거 .
최승자 시인의 시에 곡을 붙였는데…. 나는 좀 다르게 말해본다.
담배 따위, 커피 따위는 끊어도 술은 못 끊겠는 거, 그거.
지진, 그리고 깨닫게 된 것들 <진미경 회원>
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일하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바닥은 흔들리고 작업하던 노트북과 책상이 흔들리고 건물이 흔들리더니 제 동공까지 흔들렸습니다.
“이건 뭐지…. 설마 지진?”
얼떨떨하고 소름끼치는 이 상황이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난생처음 맛본 이 경험은 파노라마처럼 내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못해본 것도 많은데 여기서 죽는구나 싶었습니다. 우린 모두 본능적으로 탈출했습니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몇 초간이 지났습니다. 놀란 가슴은 진정이 되질 않았고 긴 여파를 남긴 지진공포는 세상에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도 무서웠습니다. 그 뒤로도 아찔한 순간이 몇 번 찾아왔습니다. ‘쿵’ 소리와 함께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신경이 예민한 건지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 때문에 자다가도 움찔움찔합니다. 정말이지 요즘같이 불안한 때가 없습니다. 휴대전화와 메신저가 먹통인데다가 나중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통화가 폭증했다는 기사에 완전 공감했습니다. 계속되는 지진과 여진은 이제 우리나라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생각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전엔 땅이 흔들리고 건물들이 부서져 내려 생사를 넘나드는 네팔이나 일본의 소식은 나와 먼 얘기 같았고 피부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일 같지 않습니다. 자연재해로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아픔과 슬픔, 무너진 일상 속에 살고 있을 그들의 절망과 고통을 온전히 가늠할 순 없습니다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진지해진 것 같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하루하루 감사하고 하루하루 겸손한 사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출처 : 함께하는 세상 2016년 10월호 통권 229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