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굴레와 사회적 고립의 멍에를 쓰고 죽음을 선택한 이들의 메시지에 정부와 대구시는 응답하라.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 전국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으나 정부의 대책은 해법을 찾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포용적 복지국가는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고, 지자체는 우리 지역에서만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요행만 바라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대구에서 생활고에 시달렸던 일가족 4명이 미납 고지서와 빚 독촉장만 수북하게 남긴 채 40대 부부와 중학생 아들과 초등 딸이 숨졌다. 한 달 전(11월19일) 인천에서는 3개월 긴급복지 지원을 받았으나 일가족 등 4명이 유서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되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대구 사례는 소득과 재산 등 까다로운 조건으로 기초생활수급자나 긴급복지 대상이 안 된 반면 우편함에 빚 독촉·가스비 연체 고지서만을 남기고 안타깝게 사망했다. 인천의 경우는 3개월간의 긴급지원을 받다가 중단된 가정임에도 밀린 고지서가 없다는 이유로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다가 벌어진 비극이었다.
2014년 2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송파 세 모녀 사건도 설령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했어도 추정소득 등으로 탈락했을 것이다. 이 사건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및 긴급복지지원법 개정,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 발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전수조사, 긴급복지 시스템 구축 등에 정부와 지자체는 나섰고, 대구는 ‘달구벌기동대’를 신설했다. 정부와 대구시는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가스·전기 등 미납 가구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여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제도적 지원이 힘들 시 민간자원을 연결, 지원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바도 있다. 그러나 송파 세 모녀 사건과 판박이 같은 성북구 네 모녀 사건이 11월2일에 일어났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인천과 대구에서의 비극이 발생했다. 결국, 제도를 보완하고 부양의무자 조건 등 악법 조항 등을 완화하는 등 찔끔 수정하는 것으로는 빈곤층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죽음은 한국 복지정책의 민낯이다. 역설적이지만, 빈곤층의 수많은 죽음 위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 등이 만들어지고 개정되었으며 인력도 충원되었다. 그러나 이런 복지 시스템으로는 경제적으로 생활고를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소위 복지 사각지대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라는 것을 위의 사건들은 방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증명할 수 없는 가난에, 또 설령 증명하더라도 제도적 도움을 못 받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방치하는 사회다. 한국인의 사망원인 4위이며, 2003년 이후로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26.6명, 2018년)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의 10배 이상이다(OECD, 2013년). 대구의 자살률(26.8명, 2018년) 또한 전국 평균 수준이지만 30~40대의 자살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송파 세모녀 사건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빈곤층의 자살은 계속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각지대 해소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약속했다. 그러나 생활고 등 경제적 사유로 ‘빈곤’이 ‘극단’을 불러오는 자살은 줄지 않고 있다. 이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한국 사회가 저지른 사회적 타살이며,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결과다.
빈곤의 굴레에, 가족관계 단절·사회적 고립이라는 멍에를 쓰고 싸늘한 죽음으로 이들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양극화 해소와 빈곤철폐에 기반한 근본적인 빈곤정책 마련일 것이다. 빈곤층의 죽음으로 충원되어 이를 막기 위해 현장에 투입된 전국의 사회복지공무원들도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적극 부응하길 바란다.
이에 정부와 대구시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유 없는 자살은 없고, 모든 인간은 품위 있는 죽음을 원한다.
고단한 삶 잊고 이제는 평안하시길...
2019년 12월 26일
우리복지시민연합
